대법원이 G마켓·SSG닷컴·롯데쇼핑에 웹 접근성 시정 의무를 확정했다. 시각장애인이 스크린 리더로 쇼핑하지 못하는 현실, 이제 법적으로 바꿔야 한다.

왜 이 판결이 중요한가
시각장애인은 웹사이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 화면낭독기(스크린 리더)가 페이지의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지다. 상품 사진, 광고 배너, 버튼 아이콘 — 이 모든 것이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 형태로 제공되면 스크린 리더는 아무것도 읽지 못한다. 시각장애인 이용자에게는 거대한 침묵만 남는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G마켓·SSG닷컴·롯데쇼핑을 상대로 시각장애인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및 차별 시정조치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게 웹 접근성 확보 의무를 명시적으로 부과한 대법원 차원의 첫 확정 판결이다.
소송의 시작: 31명의 시각장애인
지마켓 사건에는 시각장애인 31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단순했다. 상품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alt text)’가 없다는 것이다. 대체 텍스트란 이미지의 의미와 용도를 설명하는 짧은 문장으로, 스크린 리더가 이를 읽어 시각장애인에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버튼 이미지에 “장바구니에 담기”라는 대체 텍스트가 있어야 비로소 시각장애인 이용자가 해당 버튼의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오로지 듣는 것에만 의존하여 웹사이트에 접근하므로, 대체 텍스트 제공은 웹 접근성 보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대법원 3부 판결문
대법원이 제시한 법리
대법원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를 근거로, 정보통신 영역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전자정보에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개별 판매자가 올린 상품 이미지라 하더라도 플랫폼 사업자가 직접 시정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판매자 콘텐츠를 통제할 수 없다”는 항변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공공기관 웹사이트와 사기업 웹사이트 사이에 접근성 보장 의무의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명시했다. 그간 장애인 웹 접근성 의무는 공공기관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 이번 판결은 그 범위를 민간 플랫폼 전체로 확대한 것이다.
판결 이후 쇼핑몰이 해야 할 일
대상 쇼핑몰들은 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다음 항목에 대한 이미지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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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이미지
상품명, 가격, 주요 특성 등을 설명하는 대체 텍스트 필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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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이벤트 문구
배너, 팝업, 프로모션 이미지의 내용을 텍스트로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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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링크
이미지가 링크인 경우 연결 목적지 또는 기능을 설명
🖱
버튼 기능·용도
“구매하기”, “찜하기” 등 버튼의 역할을 명확히 안내

소송 경과: 3심의 흐름
1심
원고 승소. 차별 시정조치와 함께 원고 1인당 위자료 10만원 지급 명령.
2심 (항소심)
차별 시정조치는 유지. 그러나 쇼핑몰 측에 고의·과실이 없다는 이유로 위자료 10만원 판결은 취소.
대법원 (2025년 3월 12일 확정)
2심 판결 전부 확정. 위자료 취소도 그대로 유지. 그러나 시정 의무는 최종 확정.
위자료 없이도 의미 있는 이유
위자료가 취소된 것을 두고 “반쪽짜리 승소”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의 진짜 의미는 금전 배상이 아니라 행동 변화를 강제하는 시정 의무에 있다. 법원이 사기업 플랫폼에 접근성 확보를 직접 명령한 것은 국내 최초다.
G마켓은 이미 지난해 3월 시각장애인용 대체 텍스트 제공을 확대하고 탐색 기능을 개선하는 조치를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이미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업계 전반으로 번질 파급력
이번 판결은 G마켓·SSG닷컴·롯데쇼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법원이 민간 플랫폼의 웹 접근성 의무를 명확히 인정한 이상, 네이버 쇼핑, 쿠팡, 11번가 등 국내 주요 온라인 쇼핑 플랫폼 모두 유사한 소송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법적 선례가 생긴 지금, 자발적 개선이냐 소송 압박에 의한 개선이냐의 선택만 남았다.
웹 접근성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디지털 세계에 동등하게 참여할 권리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그 원칙을 법의 언어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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